
치트패치ts
“자네가 날 사랑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패치는 무심코 튀어나온 본심에 놀라 입을 막았다. 생각으로만 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그런것이 너무 가당치도 않은 짓을 상대가 하길래. 그런 것도 있지만, 너무 익숙해진 탓이었나.
“..없을 이유는 또 뭔가요?”
“뻔뻔한 자식.”
패치는 움직이는 혀를 잡지 못하고 짧게 일갈했다.
“이래서 네가 싫어, 내 눈앞에서 꺼져.”
“이유가 뭔가요? 꼭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마냥 구시네요…..이러시면 섭섭합니다..”
저한테 잘해주셨었잖아요….., 치트는 꼭 거절당한 것에 상처받은 것처럼 목소리를 질질 끌었다. 넘어가면 안된다, 저새끼는 만악의 근원이었다. 애걸하는 얼굴을 보면 또 넘어갈 것만 같아서 패치는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뒤통수를 몇 번이나 맞았는지, 세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또 고민하는 건…..
“선배님은 제가 싫으신거죠…..?”
잡지마! 잡지 말라고!! 제발 좀!
“..싫을리가…..없잖아..”
나이는 거꾸로 처먹었나보다..
때마침 하늘에서 눈이 톡 떨어졌다.
*
선배님
사랑에 자격이 있나요?
-written by. 탄화
*
선배님이 이상하다. 설치한 도청기며, 초소형 카메라며 발견하는 족족 다 부수시고 나를 대하는 태도가 냉해졌다. 나라는 걸 안건가. 모르는 게 더 이상하기는 하다. 그렇게 붙어다니고 쫓아다녔는데, 선배님의 삶에서 그런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누가 선배님을 저렇게 단기간에 바꿔버린거지? 자신도 본 적 없는 누군가가 선배님의 인생에 개입해 자신에 대한 태도를 변하게 만든건지 알 수 없었다. 치트는 알 수 없는 조급함에 휩싸여 덜덜 떨었다.
도대체 누가 선배를 바꿔버린거야. 치트는 입술을 짓물었다. 그가 공들여 변화시킨 선배는 조금은 물렁하고 더 물러버리면 곧장이라도 터질 수 있을 만큼 익어있었는데, 누가 시간을 거꾸로 돌리기라도 한건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냉해진 패치의 태도를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기다리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함락시킬 여지가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보여야 그러지, 기약도 없이 매일 기다리는 건 너무나 고된 일이었다. 그것도 한번 거의 무너트릴 뻔 했던 대상에게 이렇게 막막한 감정을 받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이제 그의 소중한 선배는 조수도 바꾸려고 하는 것 같았다. 무전이 오지 않아 잠잠한 기기와 그가 담당하는 모니터링 화면에 그의 선배가 비춰지지 않는 걸 보면, 마음을 단단히도 먹은 것 같았다.
그 사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일도 까마득히 먼 옛날 같았다.
손 안에 잡힐 거 같았는데, 이렇게 또 멀어진다.
어쩐지 조금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 먹먹한 감정을 누구에게 토로하랴.. 치트는 가만히 앉아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기로 했다. 할 일이 없어서 나왔다고 하면 되려나. 그는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서, 그럴듯한 구실을 생각해내려고 애썼다. 분명 그의 사랑스러운 완벽을 가진 선배를 보면 전부 잊어버리겠지만.
그래도 그 나름대로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몇년의 노력이 허사고, 멀어진 선배의 붉은 머리카락 끝자락이라도 보면 그게 그날의 가장 큰 수확이라니, 그는 어쩐지 속이 너무나 허해서 어지러운 거 같았다.
현장을 가니 수호대원 여럿 사이에 조그맣게 끼어있는 대리님이 보였다. 사실은 가려져서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거기 있다고, 그 사실이 왜 이렇게 가슴 저린지 모르겠다.
평범히 걸어갔다. 퇴근 시간은 한참 지나 있었지만, 불호령은 계속 되었다. 아닌가, 훨씬 부드럽고 이해심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를 대할 때와는 천지차이인 부드러움이 섞여있었다. 패치는 한참 일에 골몰하며 열띤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아직도 그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그게 맞는데, 그게 자신이 선배에게 바라는 것인데..
*
패치는 치트가 저만치 있을 때부터 알아차렸다.
근 십년간을 악연으로 함께 했을 조수를 어떻게 잊는다는 말인가.. 이젠 지긋지긋할 때도 되었다. 축 처진 표정으로 걸어오는 걸 보면 어지간히 눈치가 없나 싶었다. 피하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오는 걸 보면 낯짝도 두껍지, 두꺼운 만큼 잘 보이기도 하고.
일도 얼추 끝났고, 퇴근하라고 했더니 쏜살같이 나가는 대원들을 보면 얼마나 그 말을 기다렸나 싶어서 우스울 법도 한데, 저 시커먼 자식을 보면 우습지도 않다.
그렇게 현장에는 둘만 남았다.
“여긴 왜 왔나, 자네 구역도 아닌데.”
패치는 애타게 쳐다보는 조수 쪽으로 눈길을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손에는 정리할 것들이 쥐여있어서 구실도 좋았다. 별로 보고싶지 않기도 했고, 보면 또 마음 약해질 게 뻔해서. 왜냐하면, 지금까지 계속 여지를 주다가 넘어가버린 자신이 그것을 증명하니까, 더이상 바보같은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대리님은 그것밖에 할 말이 없으세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왜 그렇게 차갑게 말씀하세요..”
“원래 이런 사람인거 알잖나.”
패치는 핀잔을 주듯 말했다. 누가 들으면 따뜻하게 그에게 대답하는 줄 알겠지만, 그의 오랜 조수였던 치트는 알았다. 더이상 자신에게 관여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치트는 숨이 턱,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손도 빨라서 어느정도 정리가 끝나 간다. 끝나지 않은 건 저 골치아픈 조수 뿐이다. 언제쯤 지쳐서 나가떨어질까. 그간 질릴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한결같이 저러고 뒤통수를 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텐데. 같은 실수는 그만 반복하고 싶은데 막상 저놈의 얼굴을 보면 쉽지가 않았다.
정이란게 참 무섭지.
패치는 가만히 서있는 치트의 그림자를 보고 생각했다. 고요하다. 마치 혼자 있는 것처럼 아주 조용하고 먼 거리에 있는 듯한. 우리 사이는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치트가 바라는 자신의 모습은 항상 거리를 두고 멀리서 봐야만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더이상의 관계는 피하는 게 세계의 미래에도, 자신의 신상에도 좋은 것 같았다. 그 고생을 더 하고 싶진 않으니까.
마지막으로 함을 퉁퉁 치며, 끝이 났음을 알렸다.
“자네도 퇴근해야지.”
“…..“
“나도 슬슬 퇴근하겠네.”
고개를 숙이고 오래 있는 것도 피곤했다. 눈도 좀 뻑뻑 했고, 집에는 기다리는 사람 누구 하나도 없지만, 조수가 있는 것보단 나았다. 가만히 망부석처럼 서있는 꼴을 보는 것도 부담스럽고, 자리를 나서려고 하니까 조수가 약한 힘으로 팔을 잡는다.
억지로 잡으려고 했으면 오히려 뿌리쳤을 텐데, 이번엔 무슨 동정심을 유발하기라도 하려는지.
아니지, 약해지면 또 같은 꼴을 볼 거다.
그 생각을 끝으로 잡은 손을 풀어 예의있게 보내 주려는데…..
그러다가 뒤를 돌고 만 패치는 ‘그’ 조수가 기어이 우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그 고운 얼굴이 일그러진 꼴을 보기가 역겨워서 사실은 눈물이라도 닦아주게 될까봐, 빠르게 걸어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또 얼굴을 본건데, 패치의 가슴께가 빠듯했다. 미친 게 틀림이 없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또 마주치게 될 것 같았고, 마음은 더 약해져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듯 했다.
그는 퇴근기록을 남긴 후에 최소한의 시간으로 회사를 빠져나왔다. 입구에는 보란듯이 조수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여기서 약해지면 안된다.
저놈은 몇년이고 기다리는 놈이고, 패치는 고작 두어달밖에 안된 초짜였다.
“같이 가요.”
“싫어.”
짧고 성의없는 대답에도, 패치가 걷는 걸음마다 치트는 느리게 뒤를 쫓았다.
둘이 지나치는 거리는 크리스마스여서인지, 지나치게 밝고 따뜻한 불빛이 가득차 있었다. 분위기마저 패치가 원하는대로 되질 않았다.
“너는 집까지 따라올건가?”
“..아니요.”
“그만 귀찮게 굴게. 뭐하는 짓인가?”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우물쭈물하더니 작게 읊조렸다.
“……..”
듣지도 못할만큼 작게 뭔가를 웅얼거리는데 온몸의 털이 바짝 서는 기분이었다. 들으면 안될 거 같았다.
“..사랑해요..”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