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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트패치] 산타 대역을 부탁드립니다!

 w. 자자

 

 

“...다시 말해주겠나?”

“그러니까요~ 이번 크리스마스 이벤트에 산타 역할 한 분이 못 올 거 같다는 연락을 듣고 크게 곤혹을 치르고 있다지 않습니까. 그래서 선배님께 부탁드려본다고 말씀드리고 이렇게 온 겁니다.”

 

패치는 치트의 말에 마른세수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연말, 크리스마스, 그리고 연초, 발렌타인까지. 이 시기에 안 바쁜 날이 없긴 하다만은 보충 인력이 이렇게까지 부족할 일이었나. 모바일 부서는 패치의 관리 하에 완벽하게 이벤트 준비를 마쳤지만 타부서에서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몇 년 째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인데 왜 이렇게들 준비를 설렁설렁 하는 건지. 패치는 골머리가 나고 말았다.

 

“자네는 그걸 왜 부탁받고 온 건가. 이쪽도 도울 손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알고 있긴 하지만 같은 회사 동료 직장 아닙니까. 어떻게 힘들다는 말을 쉽게 뿌리칠 수 있겠어요~”

 

능청스럽게 웃는 모습에 그저 한 숨만 쉬며 바라보았다. 어떡하나, 그냥 거절하면 안 되는 부분인건가. 거절도 못하고 부탁하러 온 제 조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력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딱 맞춰서 준비해 둔 것이기에 이쪽도 손을 빌려주기는 좀 곤란한 입장이었다.

 

“아쉽게도 모바일 부서에는 남는 인력이 없다. 그러니 양해를 구하고 거절하고 오도록. 할 일이 아직 많네.”

“에이, 여기 남는 인력 하나 있지 않습니까.”

“...어디에?”

“선배님이요.”

 

?

패치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하나 떠올랐다. 말 그대로 띠용, 한 상황이었다. 머릿속으로 그 말에 대한 반박을 오조오억개 떠올리지만 너무 많은 탓에 오히려 머리가 지끈거렸다. 결국 몇 초간 침묵 끝에 패치가 입을 열었다.

 

“어째서 나인건가.”

“네?”

“자네가 봐도 난 바빠 보이지 않나. 지금 확인하고 점검할 것도 많은데.”

“그 정도야 저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선배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산타 대역 또한 자네가 할 수 있지 않나.”

“아... 그건 좀 곤란합니다.”

“왜 곤란하다고 말하는 건가.”

“제가 아직 말씀을 못 드렸네요. 이번에 필요한 산타 대역의 키가 170정도 되어야 한다고 해서요.”

“그걸 왜 지금 와서 말하는...”

“제가 말씀드려야 한다는 걸 자각하지 못해서요. 그럼 산타 옷 시착하러 가시겠습니까?”

 

키 170의 산타 대역을 찾는다는 말에 홀랑 부탁받아서 제게 온 치트를 향해 패치는 어이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허락도 거절도 안 했지만 이미 수락 받은냥 방글방글 웃고 있는 치트의 얼굴에 패치는 더 이상 할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 부탁 받은 것을 해결하게 되어 얼마나 마음이 편하겠니. 아니 근데 170이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부탁하는 건 좀 아니지 않니.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결국 치트를 따른 걸음은 탈의실 앞까지 오고 말았다.

 

“그럼 입고 나오시죠, 안 쪽에 입을 옷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치트의 말을 끝으로 패치는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입을 옷이...

... 잠깐만. 설마 이런 이유로 키 제한을 두고 대역을 찾은 건가...

 

“...치트.”

“다 입으셨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옷이...”

“옷이 왜요? 입는 거 도와드려요?”

“아니, 이게 옷이. 여자 옷 같은데.”

 

패치가 탈의실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옷걸이에 걸려 있던 빨간 옷이었다. 하지만 패치가 생각한 건 빨간 상의에 검은 벨트 그리고 빨간 바지였지, 빨간색 원피스는 아니었다. 가슴께부터 무릎 위까지 빨간 천으로 만들어진, 허리 부분에 검은 벨트가 있고 원피스 시작과 끝에 하얀 솜털이 둘레로 붙어있는 그런 빨간 원피스가 아니었단 말이다.

 

“탈의실을 잘못 찾는 건 아닌가.”

“아뇨, 분명 좌표는 여기로 알려줬습니다만.”

“그럼 뭔가 착오가...”

“아뇨, 여기가 맞는걸요. 입기 어려우십니까? 그럼 도와드릴게요.”

 

자기보다 큰 치트가 밀자 패치는 속절없이 밀려 다시 탈의실로 들어가 버렸다. 아니, 이건 진짜 아니잖아. 무슨 여자 대역을 남자로 써. 왜 이거에 대해 아무 의심이 없는 건가 자네는. 원망서린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치트는 그저 싱글벙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대역을 찾도록 하게.”

“왜 전문적으로 생각하지 못 하십니까? 대역이 얼마나 필요했으면 남자도 상관다고 할 정도였는지 생각해보셨나요?

“하지만 자네는 내게 정보를 너무 안 주었네. 키 제한도 그렇고, 옷 종류도 그렇고.”

“안 물어보셨잖습니까. 대역하기 전에 다 확인하셨어야죠. 정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수락하신 건 선배님 아니십니까.”

“......”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지라 패치는 입을 꾸욱 닫고 말았다. 무언가 하기 전에 먼저 어떤 상황이고 어떤 조건인지 알아두는 게 먼저여야 했는데. 제 조수를 꽤나 믿고 있던 탓에 아무 조건도 못 듣고 그냥 수락한 것은 사실이니. 그럼 수락한 것에 책임을 지어야겠지.

 

“... 그럼 입을 테니 원피스 뒤에 지퍼 올리는 것만 도와주게.”

“네, 알겠습니다~”

 

치트는 등을 돌려 옷을 작업복을 벗는 패치를 바라보았다. 어쩜 이렇게 순진한 사람이 다 있는지. 단순히 제 완벽이 어디까지 완벽할 수 있나 확인하고자, 산타걸 대역이 필요하다는 부탁을 받고 홀랑 가서 말씀드리니 못 이기는 척 결국 여기까지 온 것에 기특하여 히죽 웃고 말았다. 노출된 등마저도 이리 완벽하니 치트는 스스로 오싹거리는 어깨를 감출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에 산타걸 복장을 입은 패치? 상상만 하던 모습을 이렇게 보게 되다니 그건 또 그거대로 기뻐서. 당장에 제 완벽을 껴안아 쓰다듬어주고 칭찬해주고 싶지만 아직 탈의 중이니 조금만 참을 수밖에.

아래 속옷만 남기고 탈의를 마친 패치가 챙겨두었던 원피스를 아래서부터 입기 시작했다. 원피스를 입는 건 처음이었지만, 점프수트 형식의 작업복과 비슷했기에 어색하지 않게 입을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완전 어색했다. 아랫도리가 뻥 뚫린 기분이 영 이상했고, 치마는 분명 무릎께까지 내려왔지만 꼭 안쪽이 보여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다 입으셨습니까?”

“다 입긴 했다만...”

“그럼 뒤에 지퍼 올려드립니다?”

“...부탁하네.”

 

치트가 히죽 웃으며 패치 등 뒤에 달린 지퍼를 올리려던 찰나.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안에 누구 계신가요?”

 

패치는 대역 준비가 다 되었는지 물으러 온 건가 생각하고 대답하려는데 치트가 먼저 문 쪽으로 다가갔다. 반대쪽이 했던 것과 똑같이 두 번 노크하고 대답하였다.

 

“네, 있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아, 저 산타 옷 입으러 왔습니다. 혹시 대역 맡으신다는 분이신가요?”

“네, 대역 맡는다고 했는데. 지금 다른 대역이 온 건가요?”

“아뇨. 제가 실은 제시간에 준비를 못할 줄 알고 대역이 필요할 거 같다고 전달한 거였는데 다행히 일이 빨리 끝나서요! 대역분이 이미 탈의실에 들어갔을 거라고 이야기를 들어서 급히 오게 되었습니다. 저 때문에 괜히 고생하셨네요. 감사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잠시만요. 이제 막 옷 입었던 터라 다시 벗어야 할 거 같네요.”

“아, 네. 괜찮습니다. 기다릴게요.”

 

치트는 조금 실망한 표정이 되었지만 제 선배님께는 살짝 웃으며 다가갔다. 아쉽네요. 아직 이 옷을 완벽하게 입은 선배님을 못 봤는데. 완벽하게 입은 후에는 너무 예쁘다며 칭찬해주고 끌어안아주고 원하는 만큼 체향을 맡을 생각이었는데.

 

“다행이군.”

“다행인건가요?”

“적어도 이벤트가 제자리로 돌아왔으니 다행이라고 보네. 나 또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고. 자네는 다행이지 않은 건가?”

“뭐, 제가 부탁 받은 거였는데 수행하지 못하게 되어 조금 아쉽습니다. 타부서에서 일하시는 선배님도 보고 싶었는데.”

“이런 모습은 다들 반기지 않을 거 같네.”

“아뇨, 다들 황홀해 기절했을 겁니다.”

“근거도 없는 말은 하지 말게. 난 옷 갈아입겠네.”

 

패치는 아직 지퍼를 올리지 않은 원피스를 살살 벗었다. 잘못 벗다가 찢어지면 안 되니까. 그래도 시착만 했을 뿐 무엇을 더 하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었다. 벗은 원피스는 가지런히 옷걸이에 걸어두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이게 편하군. 아래가 막히니 그제 서야 옷을 제대로 입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가지.”

“네, 현장으로 돌아가죠.”

 

문을 열어젖히자 밖에서 기다리던 여성분이 서계셨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인 표정으로 고생하셨습니다, 말하는 말에 괜찮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걸음을 옮겼다.

 

“저기, 대역에 관해 여쭐게 있는데요.”

“아, 선배님 먼저 가십쇼. 지금 현장 바쁘지 않습니까. 제가 대답하고 곧바로 가겠습니다.”

“알았네.”

 

패치는 치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장을 향해 달려갔다. 패치가 달려가는 것을 본 치트가 고개를 돌려 여성분을 바라보았다. 이분도 머리가 빨갛고 키가 참 작으시네. 담당자분이 이러니 키 제한을 둘 수밖에 없었긴 했겠다고 생각했다.

 

“패치 대리님이 대역을 서주신 건가요?”

“뭐... 그렇습니다. 저희도 마땅히 서주실 여성분이 없으셔서요. 그리고 보기와는 다르게 여리여리 하신 분이라 여장하셔도 잘 어울리셨을 겁니다.”

“아... 그래도 어떤 역할인지 아셨을 텐데 도와주려 하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워낙 빈틈없이 완벽하게 해내시는 분이시잖아요. 아마 이번에도 그리 결심하시고 해주려 하셨겠지요. 그래도 이렇게 늦지 않게 와주셔서 선배님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주셨답니다.”

“네, 다행이지요. 그럼 전 이만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예~ 수고하세요.”

 

치트는 인사하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너무 시간을 지체한 건 아닌지 얼른 제 완벽을 보러 가야만 했다. 아, 선배님의 여러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다행인가요? 그런 완벽한 모습을 저만 본 것도 나쁘진 않았으니까요.

치트는 히죽 웃으며 현장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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