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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t

 

w. 사이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5일전. 차가운 바람이 코를 시리게 만든다. 벌써 겨울이 온 것인지 바람을 맞고 있던 사람은 손에 쇼핑백을 하나 들고 어딘가로 향한다. 이맘때쯤이면 크리스마스다 뭐다 여러 가지 행사들로 기뻐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이 커플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 잣 같은 회사는 연휴 때면 더 바빠지고 힘들어졌으니 말이다. 저도 그렇지만 특히 제 애인이 더 바빴다. 팀장직에 자리하고 있으니 몸이 남아나질 않겠지. 크리스마스에 애인 얼굴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래서 그전에 먼저 선수를 치려 한다. 애초에 이런 걸 잘하진?않지만 기분이라고?내보려고 즐거운 마음으로 케이크까지 사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집 안에는 제 애인이 또 깜찍한 짓을 하고 있다. 언제 다 만들어 놓은 것인지 상다리 부러지게 해 놓은 음식들을 바라봤다. 또 계산도 빨라 딱 우리가 먹을 만큼만 해 놓은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했다. 냉기를 감싸고 들어온 코트를 벗지 않고 그대로 음식을 그릇에 담는 제 애인의 목에 입을 맞췄다. 움찔거리며 흘기는 눈빛이 이상하게도 좋았다. 이미 음식들로 꽉 찬 상을 바라보며 투덜대듯 말했다.

 

"이러면. 케이크 둘 곳이 없잖아..."

"반찬 몇 개 빼고 놓으면 되지."

"이거 내가 다 좋아하는 건데?."

 

솔직히 가리는 것은 없었다. 저 아이가 만들어 준 것이라면 그냥 다 좋았다. 패치는 그제야 반찬들을 조금 밀어 케이크 자리를 만들었다. 케이크를 올려놓고 조금 냉기가 빠진 코트를 벗었다. 아이에게 줄 선물은 조용히 옆에다 놓고 이쁘게 붉은색으로 빛나는 케이크 위에 초를 꽂았다. 분홍색 앞치마를 벗고 다가오는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왜 하필 분홍색이냐. 귀엽게 진짜. 매뉴얼은 가만히 다가오는 패치를 보며 팔을 뻗어 그를 꼭 끌어안았다. 제 머리가 패치의 배에 있어 안긴 자세로 보이지만 저가 먼저 안았으니 내가 안은 거다.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 나쁘지 않았다. 이제 놔달라며 몸을 빼려는 패치를 더 붙잡고 입술을 내밀었다. 미쳤냐며 얼굴을 밀어내는 손길에 살짝 삐죽이니 붉어진 얼굴로 그제야 입을 맞춰오는 제 애인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패치는 이런 거에 면역이 없었다. 다른 더 엄하고 엄한 짓들은 잘만 해왔으면서 이런 간단하고 기본적인 것에 서툴렀다. 어릴 적부터 이 아이는 그랬다. 그럼 내가 알려주면 되지 라며 자신 있게 말했는데, 사귄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 우리 사이에 저 아이는 아직도 이런 행동을 부끄러워한다. 그게 더 저를 즐겁게 만들었다. 살짝 발그레해진 볼을 그대로 맞은편에 앉아 초를 켰다. 생일도 아니지만,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야 할 것 같은 마음이다.

 

"뭐, 생일은 생일이네."

"누구?"

"예수님?"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며 바로 초를 꺼버리는 아이를 바라봤다. 싱겁긴. 이렇게 누군가와 크리스마스 시즌을 같이 보내는 것은 이 아이도 저도 조금은 어색했다. 계속 일에 매진해야 했던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쉬지도 않고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둘은 만났고 이렇게 따뜻한 집에 따뜻한 저녁에 케이크와 작게 흘러나오는 캐럴까지 30대 중년의 마음을 풀어줬다. 크리스마스라고 신 날 어린 나이는 훌쩍 지나가 버렸지만 말이다. 그래도 애인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가 조금 설레는 건 마찬가지다. 둘은 조용히 밥을 먹는다. 배가 고팠는지 저 입 짧은 아이가 밥 한 그릇을 빠르게 다 비우는 것을 보았다. 또 잘 먹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말이 공감이 돼버렸다. 먹진 않고 자기만 보고 있는 눈빛을 알아챘는지 다시 천천히 먹기 시작하면서 제 눈치를 봐온다. 왜 안 먹어? 라는 질문에 저도 얼른 먹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다 비운 그릇들을 정리하려 일어나는 아이를 붙잡았다. 다시 의자에 앉히고 저가 준비한 쇼핑백을 내밀었다. 패치는 딱히 표정에 변화가 별로 없었지만 저는 알 수 있었다. 분명 저건 놀란 표정이다. 자신은 준비한 게 아무것도 없다며 뜯어보지도 않고 다시 제게 주는 아이를 말렸다.

 

"어허, 어른이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야."

 

좀 꼰대처럼 말하긴 했지만. 선물을 마다하는 것을 막긴 했다. 가만히 안고만 있는 쇼핑백을 보며 턱짓을 했다. 열어보라는 신호였다. 그걸 또 다 알아먹는 똑똑한 애인은 쇼핑백을 열어보았고 본인과 닮은 붉은 옷에 물음표를 띄었다. 잠바라기엔 가벼운 재질이고 또 그냥 옷이라기엔 또 뭔가 이상했다. 패치는 그 옷을 꺼내 들었고 매뉴얼은 웃었다. 그 붉은 옷의 정체는 산타걸 복장이었다. 까만 스타킹과 가터벨트와 함께. 패치는 어색하게 웃는 매뉴얼을 조용히 노려봤다. 크리스마스에 뭐 다른 선물이 필요하겠냐는 능글거리는 말을 들으며 조용히 쇼핑백 안에 옷을 집어넣었다. 2년동안 하도 붙어먹었으니 이런 이벤트 하나쯤은 해줘도 되지 않나 생각했던 패치는 참으로 저와 생각이 비슷한 매뉴얼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다음날 부터 패치는 바빴다. 이벤트는 무슨, 작게 혀를 차며 잠든 저를 두고 가버린 패치를 살짝 원망했다. 아니 제대로 말하자면 회사를 원망했다. 오늘부터 새해 이벤트까지의 기간 동안 패치의 얼굴을 보기 힘들다. 운 좋으면 아주 잠깐 퀭한 눈으로 저를 보며 인사하고 가는 꼬맹이를 볼 수 있지만, 그것도 미지수였다. 그래도 딱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고 믿지도 않은 신을 찾아가며 기도했다. 이번엔 제발 과로로 실려가는 일이 없길. 제발 살아 돌아오길 몇 번이라도 더 마주치게 해달라며 자신의 바쁜 날은 까먹고 패치에 대한 소원만 빌었다. 매뉴얼은 익숙해진 야근에 또 빈 연구실에 앉아있었다. 다른 부원들은 이미 집으로 돌아간 지 오래다. 12월 24일.. 11시.. 1시간만 있으면 크리스마스인데 제 빨간 꼬맹이는 어디를 가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설날이 끝나기만 기다려야 한다며 울컥해진 마음을 붙잡고 담배라도 태울 겸 문을 여니 그리 보이지 않던 애인이 불쑥 들어왔다. 매뉴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패딩 차림에 패치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아니, 스스로 들어온 패치를 막지 못했다가 맞다. 연구부 소파에 앉아 저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패치를 봤다.

 

"너, 뭐야? 왜 여기 있어? 그리고 그 패딩은 또 뭐고."

"말이 많네 아저씨"

 

패치는 살짝 붉어진 설명서의 눈가를 봤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울었느냐 물었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라는 말에 패치는 매뉴얼에게 더 다가갔고 패딩 차림으로 목까지 꼭꼭 숨긴 패치를 바라보았다. 회사 안은 분명 따뜻한데... 매뉴얼은 머리를 굴리다 포기하고 몸을 따뜻하게 해줄 차를 패치에게 내밀었다. 패치는 그 차를 들고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입만 우물거리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매뉴얼은 본인의 의자에 앉아 조용히 같이 차를 마셨다. 여태 못 봤던 얼굴 지금이라도 실컷 봐두자며 패치의 얼굴 하나하나 다 뜯어보니 또 발그레해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패치는 그대로 참지 못하고 매뉴얼 앞에 섰다. 목까지 꽁꽁 감고 있던 패딩을 풀어달라며 매뉴얼의 손을 잡고 지퍼를 잡게 했다.

 

"얼른, 아저씨..."

 

패치의 재촉에 이상함을 느끼지마는 꼭 크리스마스 선물을 풀듯이 느껴졌다. 점점 내려가는 지퍼에 매뉴얼은 귀까지 붉히며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었다. 이 발칙한 꼬맹이... 패딩 안에는 저가 선물했던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붉은 산타걸 복장과 함께 검은 스타킹을 쭉 올려줄 가터벨트 까지, 착실하게 입고 온 패치의 얼굴이 붉게 타오르는 걸 보았다. 야근하며 애인을 보지 못해 지친 몸과 마음은 이미 그 선물에 풀어졌고. 그대로 저를 꼬옥 끌어안아 오는 패치의 몸에 기대 엉덩이를 살짝 잡아봤다.

 

"아, 아저씨...!!"

"너...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입고와?"

"크리스마스잖아."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엄청났다. 아마 신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신 것인가 싶다.

그리고 연구실의 문은 찰칵하고 잠겨 한동안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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